김씨네 편의점 外

1. 미지와의 조우

이번 말레이시아 출장이 급하게 잡혔을 때, 두려움에 떨었다. 어쩐지, 동남아는 무서운 곳이라 생각해서다. 
편견투성이 생각이라는 점 인정. 서로 개성이 다른 여러 개 국가를 한데 뭉뚱그려 '동남아'로 표현하는 오류를 범한 것도 인정.
하지만 일본/북미/유럽을 각 10회 남짓 가는 동안 동남아는 단 한 번도 안 가봤다. 미지의 세계는 두렵기 마련이라규...


Free image from pixabay

하필 비행기가 연착되어 자정 무렵에 착륙했다. 동남아 많은 국가에서 영업하는 Grab을 이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Grab은 Uber와 동일한 BM이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전문 택시기사가 아니다. 차와 시간이 있으면 누구나 Uber 운전자로 나서듯, Grab도 마찬가지. 검증 안 된 현지인이 납치해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오만 상상을 했다.

공항 - 숙소까지 약 60~70RM이면(막힘 없을 때 1시간 가량 타고 가는 거리인데, 우리 돈으로 2만원 이하) 갈 수 있는데 KLIA Express를 타고 굳이 KL Sentral(*Central이 아님)까지 간 것도 그 때문. 이제 Sentral 역 - 호텔까지만 가면 되는데, 차로 약 7분, 13RM 나오는 거리. 불안함에 떨며 그랩을 불렀더니...

두둥. 나타난 것은 실망스럽게도(?) 건실해 보이는 말레이인 청년이었다. 실제로 건실하게, 내비게이션을 따라 얌전히 운전해 주셨다. 내릴 때 15RM을 주자 2RM(600원 가량)을 거슬러줬다. (...) 그냥 됐다고 했다.

이후 약 2박3일간의 출장 기간 동안 알게 된 사실. 쿠알라룸푸르는 엄청 세련됐고 치안이 좋으며, 음식이 굉장히 맛있다. (동남아 음식 입맛에 안 맞을까봐 걱정했던 게 바보 같다... 서울에 온갖 나라 음식이 다 있는 것처럼 KL도 국제 도시라 모든 맛난 음식이 다 있다 + 현지음식, 태국인들이 많아 태국음식 퀄리티가 좋음)

검증해야 하는 것이 현지향(向) 화장품이라, 이틀간 몰 10개 돔. 쇼핑몰에서 매일 1만보씩 걸었지만 관광은 전혀 못함.

※ 돌아오는 길에 지인들 나눠주려고 해당 화장품 회사 제품을 대거 구매해 왔는데, 업체 대표님께서 해당 제품 매출이 공항에서 눈에 띄게 좋았다고 자랑하셨다. BG는 "잘못된 매출 예상은 재고의 지름길"이라며 얼른 이야기하라고 했지만, 너무 좋아하셔서 용기가 안 났음. 미미하니까. 나중에 회사 잘되면 농담 삼아 꺼내봐야지. "사실 그때 말이죠..."


                                 
2. 김씨네 편의점

최근 NETFLIX 덕분에(때문에?) 영상물과 조금 친숙해졌다. 그간 개인적으로 TEXT >>>>> VIDEO 의 선호도를 갖고 있어서 가끔씩 보는 영화를 제외하면 YOUTUBE 같은 일반 영상물이나 TV SERIES 보는 걸 매우 힘들어했는데, 침대가 있고, 거대 모니터가 있고 또 NETFLIX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 볼 기회가 늘었다. NETFLIX는 자체제작 드라마 명가다. 소싱한 영화보다도 NETFLIX ORIGINALS가 일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드 보는 건 여전히 너무 힘들다. <미스터 션**>보다가 1화인가 2화만에 너무 신파라 접었다)

이 NETFLIX에, 완전 빠져들어 순식간에 정주행한 드라마가 있다. 미드 아니고 캐드. 이미 미드팬들은 다 아는 <Kim's Convenience>.  일명 김씨네 편의점.

Image from IMDB

꽤 웃기고 재밌다. 어색한 부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합격점이다. 한국계 이민 커뮤니티의 어떤 특징을 활용한 개그 센스가 상당히 뛰어난데, 그 난이도(?) 조절이 아주 예술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해서, 해당 선의 너무 안쪽으로 넘어가면 한인들만 이해하고 너무 바깥쪽에서 맴돌면 겉돌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어려움이 있다. 이 작품은 그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한 것 같다(캐나다 내에서 전반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 묘한 각도로 접근하면 자존심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데 영리하게 잘 비껴가면서 웃긴 느낌?
(전반적으로 거슬리는 부분은 거의 없었고, 딱 한 장면이 거슬렸는데 동해 vs. Sea of Japan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 보면서 '음, 이건 국내/한인커뮤니티 시청자들이 좀 발끈하겠는데' 싶었다. 추후에 검색해보니 아니나다를까 해당 부분을 지적한 게시물이 상당수 있었다. 역시 문화라는 건 다루기 어려워... )

웃기고, 또 웃긴데 묘하게 짙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것이 특징.

Reddit에 올라온 글들은 호평 일색이다. 극중 가족 4인의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고 니나 목사님, 중국계 친 사장님, 인도계 메타 사장님 캐릭터 너무 매력적이다. 메타 아저씨 너무 좋아. ㅎㅎ '아빠'랑 메타 아저씨가 가부장 대화 나누는 게 압권으로 웃김. 하지만 '진짜 편의점'을 했던 집안의 어느 한국계 미국인은 너무 마음 아파서 못 보겠다고도 했다.

의미가 큰 작품이다. 일단 첫 아시아계 주연(1인도 아니고 가족이!)으로 북미 시장에서 리얼 히트를 친 드라마라는 게 대단하다. 시즌 1~2를 성공적으로 찍었고 엄청난 떡밥이 던져진 상태로 시즌 3 방영이 예정되어 있다. 일단 Pilot 마치고 방영됐다는 것은 성공적 시그널, 시즌 3까지 제작되고 있다는 것은 더 성공적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장르가 '일상물'이라는 점. 그리고 한인 특성을 이용한 자학개그(?)가 꽤 많다는 점. 일상물이라는 건, 한인 특성이 살아있는 가족의 '있는 그대로'를 전달해도 재미있게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자학개그는 일종의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진짜 바보한테 "야, 이 바보야!"하면 엄청 실례고 당사자도 서럽지만, 머리 좋은 사람이 "하하, 제가 좀 멍청해서요..."라고 하면 농담이 된다. 자학 '개그'를 친다는 건 그래서 일종의 여유가 있다는 의미.

아까 너무 좋아하는 씬 중 하나로 꼽았던 '아빠' & 메타 아저씨가 나와서 가부장 대화 하는 모습도 그래서 좋았다. 세대차/문화차는 유머로 극복해야지, 정색하고 덤비면 상호간에 진짜 슬퍼진다. 또 다른 사례는 1편 오프닝 장면. 김 사장이 가게에 게이 페스티벌 포스터 붙이는 걸 반대하자(동성애에 보수적인 한인 기성세대에 대한 오마쥬), 포스터를 붙이려는 게이가 "그거 차별"이라고 지적한다. 머쓱해진 김 사장. "내가 동성애자 차별을 하면 왜 우리 가게에 게이 디스카운트가 있겠어요?"
이런 화법은 정신적 여유 없이는 절대 나올 수가 없음.

Crazy Rich Asians가 흥행하고, NETFLIX ORIGINALS 중 재밌게 본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도 제법 인기를 끌었다(그래서 야쿠르트 동났다고 한다)... 확실히 무언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Searching도 아주 신선하게 봄)

보이지 않는 차별이 가장 심한 업계 중 하나가 쇼비즈니스 업계가 아닐까?
사회는 PC한 메시지를 던지라고 가르치지만(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세요, 설마 너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보면 모든 올바름이 산산이 깨진다. 최대한 늘씬하며 아름다운 외모, 최상위(?라는 게 존재한다면)의 분위기를 풍겨야 대접받는 곳. White Washing이 빈번한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 엔터 업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법안 하나 통과된 것보다 더 큰 의미로 보인다. 제도의 변화보다 문화의 변화가 훨씬 파워풀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해리 포터의 Cho Chang은 너무 소모적 캐릭터(캐릭터 설정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였어. 차라리 루나 역할에 초 챙을 배치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아시안으로서 해보지만, 그건 조앤 롤링 마음이니까.


by renoa | 2018/10/12 19:32 | non-fic。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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